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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컬렉션 한국 근현대미술특별전 <사계> ⑤ 봄, 여름, 가을, 겨울, 봄 Seasons Lee Kun-hee Collections Modern and Contemporary Korean Art

끌랭의블루 2023. 6. 26. 07:25

봄, 여름, 가을, 겨울, 봄



 

김환기 Kim Whanki <무제>, 1966, 캔버스에 유채, 61×46㎝, 광주시립미술관 소장

 

 

김환기 Kim Whanki <무제>, 1960년대, 종이에 펜, 35.5×28㎝, 광주시립미술관 소장

김환기 Kim Whanki <무제>, 1960년대, 종이에 펜, 28×35.5㎝, 광주시립미술관 소장

 

 

김환기 Kim Whanki <Untitled (15-Vll-69 #90)>, 1969, 캔버스에 유채, 143x107.5㎝, 서울시립미술관소장, ©(재)환기재단·환기미술관

 

 

김환기 Kim Whanki <무제>, 1970, 종이에 유채, 58×31.1㎝, 광주시립미술관 소장

 


 

권진규 Kwon Jinkyu <마투>, 1965년경, 테라코타, 43×66×26㎝,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테라코타란 ‘구운 흙’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구웠을 때 단단해지는 점토의 성질을 이용해서 만든 조각·건축장식등을 말한다. 테라코타는 이미 선사시대부터 애용되어 온 조각 기법으로 고대 무덤, 벽 장식, 부장품 등에 활용되었다. 권진규 작가는 테라코타가 지닌 성질의 영원성에 주목했다. 권진규는 자신의 명함에 ‘테라코타 권진규’라고 자신을 소개했다고 한다. 예술가로서 자신의 정체성, 자긍심, 소재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확인할 수 있다.

권진규 작가를 대표하는 또다른 기법 '건칠'은 불교에서 불상을 제작할 때 자주 쓰이는 기법. 매끄러운 표면을 가지고 있지만, 권진규 작가는 거친 삼베의 자국을 그대로 남겨서 인물의 고독·정신성을 대담하게 자신만의 독창적인 기법으로 승화시켜 표현하기도 했다. 

 

권진규 Kwon Jinkyu <이순아>, 1968, 테라코타, 48×34×22㎝,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권진규기념사업회 • 이정훈


“모델의 내적 세계가 투영되려면 인간적으로 모르는 외부 모델을 쓸 수 없으며 ‘모델+작가 = 작품’ 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모델의 내적세계에 대한 견해를 강조한 말이다. 1960년대에 들어 권진규 작가는 여성두상과 흉상을 다수 제작했고, 항상 제자나, 주변 인물을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1967년 권진규 작가는 미술평론가 유준상의 소개로 서라벌예술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학생 이순아를 알게 되어 작품 모델을 의뢰했다. ‘이순아’ 작품은 테라코타가 지닌 영원성과 함께 얼굴 부위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의 과감한 묘사 생략이 대상 본질에 집중하게 만든다. 곧고 길게 뻗은 목, 살짝다문 입, 정면을 응시하는 은은하면서도 강렬한 눈빛에서 진정 프로다운 모델 모습과 작가 정신이 느껴졌다.

 

권진규 Kwon Jinkyu <자소상>, 1967, 테라코타, 35×23×20㎝,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어깨를 깎아낸 간결한 삼각형 몸체에 눈은 편안하게 먼 곳을 향한 듯 바라보고 있다, 신뢰있어 보이는 두툼한 입매와 함께 얼굴비율보다 조금 커보이는 귀 등 조각 인물상의 전형적인 모습을 모범적으로 보여준다. 

권진규 조각가 1922-1973, 함경남도 함흥 출생, 그는 음악을 감상하던 중 '소리를 양감으로 표현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조각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 후 6년 동안 이쾌대, 1913-1965와 이인성, 1912-1965이 운영하는 사설 미술교습소인 성북회화연구소에서 수학하고 1949년 무사시노미술대학교교화의 조각과에 입학했다. 일본에서 8년간의 유학시절 동안 시미즈 다카시 1857-1931로부터 미술을 배웠다. 그는 부르델과 다카시의 영향을 받아 태생을 바탕으로 인체를 정확하게 구현하고자 했다. 불상에 대한 관심이 많았는데, 이는 동양 고전에 대한 탐구에서 시작된 것으로 작품에서 "영원성의 미'를 추구하였다. 그는 건칠 기법과 테라코타를 사용하여 조각에서 동양고전의 원형을 표현하고자 했다.

 

 

 

 

 


 

 

최중태 Choi JongTae <서있는 사람>, 1980, 청동, 126×33×25㎝,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최종태 작가의 이 청동 조각상은 경기도미술관 큰 통창의 자연빛이 스며드는 위치 선정은 넘나 찰쌀떡센스였다. '서 있는 사람'은 오른손을 얼굴에 대고 골똘히 생각에 잠긴 듯 서 있는 사람을 조각했으며, 작가 특유의 단순성과 정면성·정지성·간결성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었다. 청동 조각의 표정은 구체적이지 않아도 그 자리에 서있는 자체만으로도 절대적 존재감을 뿜어낸다. 

장욱진 작가 제자라고 알려져 있다. 장욱진 작가가 서울대 교수시절 술 사주던 제자였다고 ㅎㅎㅎ "나는 심플하다"는 말을 술 취하면 허구헌날 했다고 한다. 장욱진 작가 자서전을 최종태 작가가 쓰셨다고 한다.

최종태는 추상과 구상을 넘나들며 절제된 표현방식으로 주로 인간 형상을 조각해 왔다. 한국 조각계에 추상이 주류를 이루던 1960~1970년대 최종태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조형어법을 구축해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허무는 실험적 작품을 보여줬다. 작업 초기부터 그는 형식과 형태 실험을 통해 간결한 선을 가진 정면성의 입체 조형,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초월한 형태 등의 작업으로 끊임없이 인간 삶의 본질과 영성에 대해 탐구해 왔다. 

 


 

하인두 Ha Indoo <무제>, 1986, 캔버스에 유채, 162.0×130.3㎝, 경기도미술관 소장

 

하인두 Ha Indoo <만다라>, 1977, 캔버스에 유채, 162.3×135㎝,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한국전쟁 때 청년시절을 보낸 전후 1세대 예술가인 하인두 작가는 박서보 작가와 함께 1957년 '현대미술가협회'를 창립하고, 1962년 '악튀엘' 창립과 전시를 이끈 한국 앵포르멜 운동(미술가의 즉흥적 행위와 격정적 표현을 중시한 전후 유럽의 추상미술)의 주역이다. 대표작 '만다라'와 '혼불' 시리즈는 한국 현대화단에서 생명에의 경의와 불교적 해탈의 의미를 추상화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작업 초기의 '만다라'는 온통 붉은색의 원 안에 불안정하고 불균형한 원과 세모의 도형이 배치되는 형태를 기본으로 한다. 불교의 만다라 조성을 자아의 형성, 또는 치유에 활용했던 정신과 의사 김종해와의 교류 속에서 탄생한 '만다라' 연작은 우주적 질서의 근원인 생명에 대한 풀이이자 심리지도의 성격을 가진다.

이번 이건희컬렉션 1977년 '만다라' 작품은 비교적 초기 작품이다. 강렬한 원과 붉고 푸른 네모들의 해탈적 향연이다. 이렇듯 추상 성격이 잘 드러난 수작이며, 후기작인 경기도미술관 소장품 '무제'(1986)는 빛으로 가득 찬 스테인드글라스를 연상시키는 색면 구성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말년의 대표작인 '혼불' 연작을 예감하게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으로 순환된다. 흐르다가 반복되다 우리 삶에 스며들은 계절속에서 내 자신이 흐르고, 반복됨을 느끼기도 한다. 계절이 바뀌고,  새로운 모습이 나타나고, 익숙한 모습을 또 보여주듯, 나아가기 위해서도 되돌아보게도 된다. 이 흐름들이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는 좋은 영감의 흐름으로 이어지길 소망한다.

 


 

김영주 Kim Youngjoo <인간들의 계절>, 1975, 캔버스에 유채, 162×130㎝,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김경 Kim Kyung <조우>, 1960, 캔버스에 유채, 79×57.5㎝,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이 작품은 유화인데 색채며, 마띠에르며, 거칠게 올려진게 너무나도 한국적이다. 우리나라 국보같은, 정말 신비하고 뛰어난 보물 작품들은 어김없이 이건희컬렉션 리스트에 있었다 ㅎㅎㅎ 컬렉터의 재력을 과시하는건지... 그동안 숨겨놓고 머니세탁과 재산증식에만 몰두하더니, 저 세상 가고 나서야 상속세 무서워 내어 놓았다는 세간의 따가운 눈총도 있긴 하지만 어찌되었던 우리나라의 멋지고 훌륭한 무형문화재 같은 미술 작가님들이 재조명되고, 재평가 되고, 소중한 작품들이 대중적 시선을 받는 양지에 풀려나와서 무료전시로 관람하게 된 것에 감개무량, 감동적이긴 했다.  

그런데 뜬금 이 시점에서 여담으로 '장 자크 상뻬' 데셍모음집의 이 그림이 생각났어요! ㅎㅎㅎㅎ 난 왜 하필 이 페이지에다가 북마크 포스트잇까지 붙여두었었나 싶다 ㅋㅋㅋㅋㅋㅋ 그냥 촌철살인이라서겠지....  

당신이 이토록 그림을 좋아하시는지 미처 몰랐습니다! 

(원화를 각색하자면 : 왼쪽부터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나혜석, 천경자, 장욱진, 김경, 권진규, 유영국, 오지호, 김기창 이인성 등등)

 

 


 

 

박생광 Park Saengkwang <투우도>, 1984, 종이에 수묵채색, 89×241.5㎝,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내고(乃古) 박생광 작가 1904~1985 경남 진주 출생, ‘그대로’ 아호를 쓰며 평생 야인처럼 화단의 아웃사이더로 떠돌았던 화가이다. 일본이나 국내나 주류 관변 아카데미즘과는 담을 쌓고 자유주의자, 순수주의자로 작가적 철학을 지키는 데에는 변함이 없었던 화가로 평가 된다.

진주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진주농업학교를 다니던 중 1920년에 경도로 건너가 다치카와미술학원 수업. 1923년 일본경도시립회화전문학교 입학. ‘근대경도파’ 기수인 다케우치·무라카미 등에게 고전과 근대 기법의 결합을 시도하는 신일본화를 배웠다. 일본에서 1945년 귀국할 때까지 명랑미술전·신미술인협회전·일본미술원전 등을 중심으로 활약하였다. 광복이 되자 고향인 진주로 내려가 작품 활동을 하면서 백양회창립전에 참가하였다. 1963년 경상남도문화상을 수상. 1967년 홍익대학교와 경희대학교에 출강했고, 1974년에 다시 일본으로 갔다. 동경거주로 일본미술원전의 회원이 되었고, 3차례의 개인전을 개최하였다. 1977년 귀국과 동시에 진화랑에서 개인전을 열어 크게 명성을 얻었다. 1981년 백상기념관 개인전. 1982년 인도 성지순례, 뉴델리인도미술협회에 초대전. 1985년 파리 그랑팔레 르 살롱전에 특별초대. 1985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 추서, 1986년 호암갤러리에서 1주기 회고전 개최했다.

초기 일본화적 경향에서 탈피하여 우리나라의 샤머니즘·불교 설화·민화·역사 소재 등을 주제로 삼아 폭넓은 정신세계를 전통적인 색채로 표현하였다. 미술사적 위치는 우리나라의 채색화 부분에 새로운 가능성과 활로를 제시하였고, 한국적 회화를 현대적 조형성으로 효과적으로 표현하였다. 또한 우리나라의 역사적 주체성을 회화로서 표현하고자 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외색 논란도 있지만 자신의 민화라든지 불화 이런 양식들을 연구해서 독자적인 색채를 가지게 되었다. 이 <투우도>는 의외로 다양한 변화와 시도를 했는데 말기 후두암으로 타계하시기 전 말년 작품이라고 한다. 해외여행에서 투우하는 광경을 보고 에너지 충돌같은 기운을 역동적 화면으로 담아낸 수묵 작품이다. 

다들 왜색이라고 비난하던 채색화의 세계를 한 평생 정진하면서 우리의 미감에서 거의 사라졌던 색채에 대한 무의식적 감각을 회복시켰다는 점에서 박생광 작가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한국화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곽인식 Quac Insik <무제> 1980, 캔버스, 종이에 수채, 166×100㎝,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곽인식 Quac Insik <작품 86-KR>, 1986, 캔버스, 종이에 수묵, 225×136㎝, 리움미술관 소장

 

 

곽인식 Quac Insik <작품>, 1980년대, 종이에 수채, 54.2×72㎝, 경기도미술관 소장


곽인식 작가 1919 - 1988, 경남 대구 출생, 1937년 일본 도쿄 일본미술학교 수학. 1941년 귀국 대구에서 첫 개인전, 1949년경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서 정착. 1937년 독립미술협회전, 1949년 이과회전 등 출품, 여러 차례 개인전을 개최했다. 그는 1954년 요미우리신문 앙데팡당전에서 최우수상 수상, 1956년 아사히신문 주최 신인상 수상. 1965년 일본국제미술전에 초대전. 한국미술계와 교류하며 1968년 도쿄국립근대미술관 '한국현대회화전', 1970년 국립현대미술관 '한국 현대작가전', 1971년 파리 '한국 현대회화전', 1977년 도쿄 센트럴미술관 '한국 현대미술의 단면전'. 1969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한국인 화가로 참여. 

작품활동 초기에는 표현주의적인 작품으로 주목을 받았다. 1960년대부터 평면적인 회화 작업에서 벗어나 돌, 유리, 나무, 금속판, 점토 등을 화면에 붙이며 작가의 행위와 작품의 물질성이 강조되는 작품을 제작했다. 원으로 자른 종이로 화면을 구성하는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고 이 시기부터 점, 원 등 기본적인 형태에 관심을 갖고 작품을 통해 탐구하는 양상을 보였다. 물질을 재료로 하는 작품 외에도 먹을 중심으로 사용하는 작업도 병행했다. 판화 기법으로 불규칙하게 찍힌 먹이 원을 그리도록 제작했다. 일본의 전통 종이인 화지에다 투명한 색점을 가득 메운 위의 작품들이 이에 해당된다. 평면의 종이는 여러 번 겹쳐 그려지고 종이에 스며든 형형색색 점으로 인해 공간감과 두께를 확보한 표면이 된다.

곽인식은 다양한 재료의 활용과 작업 방식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실험정신이 뛰어난 작가로 평가받는다. 또한 그는 그의 물질성에 대한 탐구가 1960년대 중반 이후로 본격화된 서양의 아르테 포베라나 일본의 모노파 미술운동보다 먼저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시대를 앞선 전위적인 미술작가로 평가받는다고 한다.

이렇게나 다양한 미술적 기법과 소재 변화를 끊임없이 추구하고 시도했던 우리나라 근현대 미술 작가님들에게 무한한 존경과 박수를 보낸다. 위의 <작품 86-KR> 수묵 판화에 불규칙하게 찍힌 먹물이 원을 그리며, 텍스쳐를 무한하게 만들어내도 지루함이 없는 작품을 보고 있자니 블랙이 지금까지도, 아니 앞으로도 모든 창작 회화요소로도, 패션으로도, 디자인적으로도 영원한 스테디셀러 고급진 아이템으로 인류에게 사랑받는 이유를 이제서야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