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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컬렉션 한국 근현대미술특별전 <사계> ② 자연으로부터 Seasons Lee Kun-hee Collections Modern and Contemporary Korean Art

끌랭의블루 2023. 6. 24. 10:57

자연으로부터


 


 

유영국 Yoo Youngkuk <산> 1961, 캔버스에 유채, 136.5x194.5㎝,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유영국 Yoo Youngkuk <작품> 1974, 캔버스에 유채, 134.5x161.7㎝,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유영국 Yoo Youngkuk <산> 1997, 캔버스에 유채, 132x132㎝, 경미도미술관소장


'자연으로부터' 섹션에서는 자연 모티브를 통해 한국 근현대미술에서 작가들이 어떤 표현과 시도들을 했었는지 전반적으로 볼 수 있었다.

유영국 작가 1916-2002, 울진군 태생이다. 깊은 산과 푸른 동해바다가 보이는 고향 울진에서 자라면서 산이라는 거대한 오브제는 자연스럽게 예술적영감을 주는 가장 크고 좋은 소재였을거 같다. 이번 전시에는 3작품이 걸렸다.
유영국 작가의 작품세계는 산, 바다, 노을 등의 일상 속의 자연형태를 선, 면 등으로 단순화시켜 강렬한 색채로 표현한 추상화 작업을 특징으로 한다. 형태는 비정형에서 점차적으로 엄격한 구성의 기하학조형을 사용하는 흐름을 보였으며, 컬러는 빨강, 노랑, 파랑의 삼원색을 기본으로 초록, 보라 등을 통해 변화를 시도, 동일 계열 컬러라도 다양한 명도와 채도를 절묘하게 사용함으로써 단조로움에서 벗어난 색채의 조화를 이루었다. 전반적으로 표면 마띠에르는 살렸으며, 이런 추상화들은 자연의 정수에 가까워지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해석된다.

유영국 작가는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다. 기본적 조형요소, 색채를 강렬하고 절묘하게 사용해 자연추상을 형상화한 자신만의 독자적 화풍을 구축, 60세까지 다양한 조형실험을 했고, 급격히 변화하는 한국미술계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선, 면, 색을 중심으로 자연이라는 대상을 환원시키려는 작품세계를 고수한 외곬수적인 면모로서도 긍정적평가를 받는다.

 


 

이종상 Lee Jongsang <조국, 원형상91-65> 1991, 동유화, 142.8x190㎝,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작품앞에 서자마자 마름모 검은 동판에 "빨파" 컬러가 애국애국! 한국한국! 느낌이 뿜어져 나왔다. 가벼움과 웃음끼 뺀 묵직한! 진지한! 국뽕한사발 드링킹한 기분이다.

일랑 이종상작가님은 '독도의 기', '독도 일출' 이라는 걸출한 먹의 힘과 민족혼이 느껴지는 수묵화작품이 먼저 떠오른다. "동판위에 거친투명선,면이 텍스처로 고지도 맵처럼 올려져 굳은 액체는 무엇일까?"로 같이 관람한 작가님과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난 수지액이라고 우겼다. ㅎㅎㅎ 수지액은 내 업계에서는 일반적으로 표지디자인의 고급스러움을 표현하기 위해 후가공 형태로 엠보싱해 덧입히기도 하고, 각종 기념품이나 뱃지에도 디자인에 덮어 구워내어 제품을 완성하는데 많이 사용하는 후가공 재료다.

동판에 저렇게 굳은거라면 묽은 아교일까 싶기도 하고... 칠보는 아닐까 싶었는데 역시 칠보였다. 궁금해서 다녀온 후 사진정리하면서 찾아봤더니 칠보매재에 의한 벽화방식의 원형상시리즈중 한 작품이었다. 우리전통과 민족정신에 깊이 뿌리박고 터부없이 넘나드는 질료와 소재, 기법에서는 무한한 창의력과 다양성을 시도하며, 끊임없이 살아 꿈틀거리는 한국인의 시대정신이 가미된 새한국화의 선구자셨다. 

원형상시리즈는 우리나라 고지도 등에서나 볼 수 있는 산세와 물줄기 상형이 어우러져 도형적산수화라고 볼 수 있는데 실험기간이 벌써 십년은 넘었다고 한다. 4·19혁명 등 민주화 혼란기를 거쳐 민중삶을 그린 인물화를 실험했고, 70년대에는 진경산수, 민족의식과 역사의식 속에 독도는 물론 고구려 고분벽화→고려불화→조선조 영정·궁중화로 이어진 벽화운동 등. 이 화백의 실험정신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었다. 

 


 

류경채 Ryu Kyungchai <축전 88-5, 88-6> 1988, 캔버스에 유채, 128.5x96.0㎝, 경기도미술관 소장

 

류경채 Ryu Kyungchai <계절> 1965, 캔버스에 유채, 250x106㎝,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류경채 작가 1920~1995, <계절> 이번 이건희컬렉션에서 그림금사빠인 나의 마음에 쏘옥 들어 와버린 잊혀진 거장! 서정주의 추상화가! 류경채 화백의 작품이다. 류경채 작가의 색감은 정말 볼수록 현대적이고, 지금 활동하는 유명작가라고 해도 믿을만큼 세련되고 트랜드터진 독보적 색감이었다. 세로로 긴 캔버스에 아래

황해도 해주태생, 일본유학, 사범학교 교편, 1949년 해방, 30세즈음 처음열린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 '폐림지 근방' 대통령상. 1950~60년대 사슴, 비둘기, 해바라기를 그린 구상 작품은 세련된 색채와 표현주의 작품으로 지금도 걸작으로 평가 받는다. 이화여대, 서울대 교편, 미술교과서 저술 참여, 평생 유화만 200여점을 남겼고, 최소 50호이상 대작들이라고 한다. 드로잉작품도 거의없고, 과슈나 수채화작품도 거의 없다고 한다. 밀도와 완성도를 중시하느라 적게 그리는 과작작가를 자처했다고 한다. 말년엔 엄격한 기하학적 추상작품에 몰두했고, 역시 따뜻한 '서정성'이 자리잡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생전 두 차례 개인전밖에 열지 않으셨다니... 파볼수록 놀라운 작가였다.  63세때 1983년 춘추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고, 1990년 현대화랑이 2번째이자 마지막 개인전이었다고 한다. 구애화랑이 없어서도 아니고 극도의 결벽주의와 완벽주의 성격때문이라고 추측한다는데 진정성있는 작가의 생전 말씀을 읽어보면 이해가 천번만번 가고도 남음이다.

"내 그림은 살 사람도 없지만, 팔 생각은 더더구나 없다. 그림일로 안색을 바꾸는 일도 싫고, 돈 받으려고 머리를 조아리는 일은 죽기보다 더 싫다. 차라리 한 끼를 굶는 것이 뱃속이 편하다" 

"서울풍경을 그리면서 그림이 잘되지 않아 화폭을 지워보니 오히려 원하는 그림이 됐다"

"추상은 마음에 비치는 심상의 에센스를 표현하는 것"

"예술가라는 것은 순교자와 수도승과 같은 존재입니다. 남몰래 노력하고 남몰래 심혈을 바쳐 자신을 깨닫는 것이 예술입니다. 어느 틀에 맞춰서, 어느 유행을 좆아서, 어느 경향을 재빨리 수입하는 이런 것들이 아니에요"

남겨진 작가의 말한마디 한마디, 예술가의 수도적 고된 삶과 철학스민 명언투성이다. 일본유학 경력이 무색하게 오히려 더 한국적이고 토속적인 작가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 중복, 초파일, 단오등 작품 제목에 우리나라 절기가 많이 등장하는 것도 친근감과 존경심이 든다. 아직까지도 본격적인 재조명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니... 내가라도 부지런히 널리 알리고 홍보하고 싶다. 

국전 1회 대통령상 - 폐림지 근방, 94×129㎝,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이번 전시에는 없는 작품이예요~)

국전1회 대통령상 수상작 ‘폐림지 근방’ 작품은 당시에 매일 출퇴근하던 사범학교(현 한양대) 인근의 벌목으로 황폐해진 야산을 그린 것. 당시 유행한 인상주의, 아카데미즘적인 사실주의화풍으로 그린 작품이 아니라는 이유로 모심사위원은 “위험한 작품”이라며 반대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오히려 “구체적인 자연이미지에서 출발해 비구상에 도달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리하여 결국 이 작품은 국전에서 구상을 넘어, 비구상과 추상을 수용하고 넘어가는 가교가 되었다.

 

 

오지호 Oh Jiho<여수항 풍경> 1978, 캔버스에 유채, 90.0x64.7㎝,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오지호 작가 1905-1982, 전남 화순태생, 한국근현대 화단에서 인상주의 화풍 대표작가. 구한말 보성군수를 지낸 나라 잃은 통한에 자결한 아버지 오재영의 영향으로 오지호는 강직한 성품과 남다른 민족의식을 지니게 되었다 한다.1922년 조선미술전람회 나혜석 '농가'를 본 뒤 평생 화가로 살겠다 결심했다고 알려진다. 

1926년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에 들어가 당시 일본화단 주류였던 후기인상주의에 깊은 영향을 받았지만 단순한 수용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한국적 풍토에 맞는 인상주의 미학을 수립, 독자적 작품세계를 구축하였다. 1931년 서울로 돌아와 사실적 자연주의 기법의 유화를 발표, 1935년 무렵부터는 향토주의 화풍에서 벗어나 우리나라의 자연을 단순화한 형태와 밝고 명랑한 색채로 담아냈다. 1935년부터 개성 송도고보의 미술교사로 재직했고, 송악산밑 초가에서 살았는데 대표작 '남향집' 모델이 바로 그 집이라고 한다. 

오지호는 인상주의 화풍을 적극 수용하고, 우리의 자연을 화폭에 담아서 토착화시킨 '빛을 그린 화가'로 불린다. 무등산 산신령이라 불릴 정도로 무등산을 사랑하고 무등산을 즐겨 그렸다. 오지호 화백은 1982년 크리스마스에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생을 마감, 크리스마스 이브에 태어나 크리스마스에 사망했다고 한다. 1985년 오지호 화백 미망인 지량진여사는 남편 작품 34점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 전남 화순군 동복면 독상리에 오지호기념관이 있다. 

한국의 인상주의, 한국의 빛을 그린 화가, 서양의 인상주의보다 색감과 붓터치를 거칠게 더 파격적으로, 더 쎄게 쓴 느낌이랄까... 그래서 더욱 감상하는 맛이 있다. 실제 작품으로 보면 여수 바다의 깊고 푸르른 빛이 그대로 보이는 듯하다.  
빛과 어울린 강렬한 그런 바다색이기도 하고 정박중인 선박의 네모네모한 표현과 빛 대비가 강렬하게 남는 작품이다.

 


 

박고석 Park Kosuk, <홍도풍경> 1979, 캔버스에 유채, 45.5x53.5㎝,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박고석 Park Kosuk,<외설악> 1980, 캔버스에 유채, 60.5x73.0㎝,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박고석 작가 1917~2002, 작은 호수의 그림이지만 강렬한 느낌을 준다. 굵은 테두리선율을 감상하자니 조르주 루오의 그림이 생각나기도 하고, 야수파적인 그림 속성이 옅보인다. 산의 화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한국에 있는 산과 들을 모티브로 설악, 도봉산, 북한산등 산의 정기를 단번에 물아일체식으로 화면안에 담아내는 것으로 유명한 화가이다. 우리나라는 유달리 고만고만 정겹고 잘생긴 산들이 많아서 그런지... 산을 정말 한국적 모티브로 잘 살려 그려내는 화가들이 참 많은거 같다.

속도감이 읽혀지는 대담한 붓터치와 선명하고 굵은 테두리선, 한국조각보를 기워 붙이듯 산, 나무, 구름, 돌들이 이어진 기하학적 추상느낌이 시각적으로도 화려함과 즐거움을 듬뿍 선사해준다. 

미술은 자연속의 우리 삶을 기록하고, 우리는 미술에 담긴 심층적 철학적 삶의 흔적을 찾아간다. 21세기 인간 부재, 자연부재 시대에 인간과 자연의 고귀함을 지키고, 삶 본질에 대해 일깨워주는 박고석 작가의 작품을 통해 따듯한 위로와 함께 감상하는 삶에 대해 고마움을 새삼 느낀다. 

 


 

 

강요배 Kang Yobae<황파 1> 2002, 캔버스에 아크릴 채색, 161x259㎝, 경미도미술관 소장

 

강요배 Kang Yobae <나무빛> 2005, 캔버스에 아크릴릭, 112.1x162.1㎝,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강요배 작가 1952~, 제주도 태생, 1979 서울대학교 미술대 회화과 졸업, 1981 동대학원 서양화전공, 회화학석사 취득했다. 80년대 후반부터는 제주도 역사를 다룬 작품들을 많이 그렸고, 제주4.3에 대한 연작을 제작하여 1992년 '제주민중항쟁사'라는 이름으로 개인전을 열었고, 1998년에는 화집 '동백꽃 지다'를 출간했다.
본인이름도 제주 4.3 항쟁과 연관이 있다 한다. 4.3 항쟁 당시 동명이인인데도 구분않고 모두 학살해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를 목격한 강요배 작가의 부모는 이름을 특이하게 지으면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해 '요배'라는 독특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1998년에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에서 민족예술상을 수상, 2007년부터는 민족미술인협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금은 제주도에서 창작활동에 매진하며 전시회도 열고 있다.

이번 경기도미술관도 화랑유원지이고, 세월호당시 추모공간이 있던 곳이라 어떤 힘 에너지, 혹은 민중적 아픔이 내재된 연관성을 찾을 수도 있고, 파도치는 제주바다를 표현한 거친 붓터치와 함께 공감을 느끼면서 감상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구상인듯, 추상인듯, 파도이기도 하고. 아픔이기도 하고.... 

자연을 소재로서 다루는 부분에 있어서 굉장히 독특한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강요배 작가는 거의 대부분의 모티브가 제주도이고, 위의 '황파1'은 경기도미술관 소장이고, 아래 '나무빛' 작품은 이건희컬렉션 작품이다. 나란히 걸린 두 작품의 에너지를 느끼며 자연으로부터의 섹션을 감상하는 동선에는 경기도미술관 통창으로 바람부는 나무, 자연풍경이 보이고 자연빛이 스며들어 경기도미술관만의 고유한 자연풍경이 어우러져 좋은 감상포인트이다. 

작품이 가진 에너지는 실제로 원화를 봐야 생동감있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그만큼 우리 민생사도 오래된 역사도, 현재도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거친 풍랑과 풍파가 있었던 사실을 새삼 공감하면서 보게 되었다. 

"첫 번째로 오는 큰 느낌. 이게 상당히 소중한 것 아닌가…"

"제주도는 날씨 바람이 많이 불기 때문에 변화가 많고, 구름의 변화도 많다. 날씨가 그때그때 다르듯이 제 기분도 달라진다"

강요배 작가의 그림은 형태가 뚜렷한 구상화는 아니다. 오히려 추상화에 가까운 작품들도 적지 않다. 사진을 바탕으로 풍경을 재현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연 첫인상을 첫마음에 담아 큰 캔버스에 장엄하게 펼쳐내고 정서를 환기해 뿜어내 에너지를 표현하고 그리는 작가의 내면세계 또한 정말 존경스럽지 아니한가!

 


 

 

도상봉 Do Sangbong <라일락> 1959, 캔버스에 유채, 50.3x60.8㎝,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도상봉 Do Sangbong <개나리 > 1974, 캔버스에 유채, 53.4x45.5㎝,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작품 액자유리에 맞은편 작품 비춤 주의>


도천 도상봉 작가 1902-1977, 함경도 홍원출생, 일본 도쿄미술학교에서 서구 아카데미즘에 영향을 받았다. 귀국후 경신고보, 보성고보, 배화여고, 경기여고, 숙명여대 등에서 교편을 잡고, 광복이후 대한미술협회 창립멤버로 참여, 대한미술협회위원장으로 미술행정가의 길을 걸었다. 꽃 그림으로 잘 알려져 있는 작가이지만 워낙 조선백자, 달항아리 같은 도자기를 많이 사랑해 ‘도자의 샘’이라는 뜻의 '도천'으로 호를 삼을 만큼 도자기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한다.

백자에 담긴 화사한 꽃을 많이 그렸다. 라일락, 개나리, 코스모스, 안개꽃 등이 부드러운 선과 은은한 색조, 견고한 조형미를 갖춘 백자와 어우러진 풍경은 격조 있는 아름다움을 전해준다. 도상봉은 일생에 초지일관 아카데믹한 자연주의의 시각을 견지한 대표적인 화가. 자신과 그림에 대해 매우 철저한 사람이었으며, 확고한 고전주의적인 태도를 유지하면서 자연을 관찰하고 이를 분석하여 철저하게 대상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고자 했다. 탄탄한 데생실력과 엄격한 구도를 기반으로 작품에 빈틈을 허용하지 않고 원칙에 충실했다. 대상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깊이 있고 무게감 있는 색조, 그리고 구도의 안정감은 정지된 사물의 한순간을 포착해 보는 이로 하여금 고요와 관조의 시간을 갖게 해준다.

나라 잃은 슬픈 조선의 배경에서조차 금수저미술가의 아카데미적, 고전적 코스를 거친 작가작품을 보면서 갑자기, 하필 이 시점에 현실과 시대정신을 민감하게 생각한 월북화가 이쾌대 화백의 비판적 평가가 생각나서 살짝 웃음이 나왔다 ㅎㅎㅎ

“그림은 참 잘 그렸지만, 이런 시절에 어떻게 도자기만 저렇게 그릴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노수현 Noh Suhyun < 망금강산도 > 1940, 종이에 수묵채색, 34.5x139㎝,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변관식 Byeon Gwansik <강촌추색> 1960, 종이에 수묵채색, 38.0x115.8㎝,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이상범 Byeon Gwansik <강촌추색> 1960, 종이에 수묵채색, 38.0x115.8㎝,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심산 노수현 1899-1978, 황해도 곡산태생, 우리나라 전통 산수화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청전 이상범 1897-1972, 소정 변관식 1899-1976, 한국화의 현대화와 개성화에 집중한 데 반하여 노수현 작가는 전통의 맥을 계승하면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작가로 평가된다. 특히 '바위산'을 즐겨 그린 화가로 유명한데, 작업 초기에는 전통적인 관념 산수화에 집중하면서도 전통을 답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품에 사생적 요소를 부분적으로 도입하였다. 전국 명승지와 금강산을 유람하던 1940년대부터는 그의 작품에 새로운 변화가 감지된다. 암산의 형태 묘사가 중시되고 먹의 표현이 두드러지는데, 이는 1950년대에 이르러 본인의 전형적 산수화 양식으로 완성된다.

"젊었을때, 나는 전국의 명산을 다 돌아보았는데, 역시 산은 금강산이야. 그보다 더 좋은 산은 없더군"

망금강산도 1940, 심산이 1940년대에 많이 그린 금강산을 주제로 한 작품 중 하나다. 이 작품에는 그의 금강산에 대한 애착과 그리움이 어김없이 나타난다. 수려하게 표현한 산세 사이로 자욱한 운무가 자아내는 고취는 심산의 농익은 화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