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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컬렉션 한국 근현대미술특별전 <사계> ① 인트로, 새로운 계절 Seasons Lee Kun-hee Collections Modern and Contemporary Korean Art

끌랭의블루 2023. 6. 22. 01:34

경기도미술관에서 하는 "이건희컬렉션 한국 근현대미술특별전 《사계》" 전시에 지난 토요일에 다녀왔다.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이건희컬렉션 46점과 경기도미술관, 공사립미술기관 11곳 소장품까지 더해서 한국근현대미술의 주요작가 41명 작품, 전체 90점이 전시되었다고 한다. 1927년부터 2010년에 이르기까지 일제강점기, 전쟁과 분단, 민주화운동 등 격동의 현대사를 살아낸 예술가들이 시대와 교감하며 남긴 작품들을 통해 한국근현대사속에서 미술이 어떻게 추동되어왔는지 그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전시명은 클래식음악 비발디의 「사계」를 연상시키듯, 동시대미술의 자양분이 된 작가들의 수작들을 다채로운 화음처럼 살펴볼 수 있어서 기획했다고 하네요. 자연, 계절감, 시간성 등 ‘사계’와 관련하여 볼 수 있는 요소들이 있고, ‘조화’, ‘자연’, ‘향수’, ‘순환’ 등 추상적인 개념으로 확장, 분류하여 전시구성하였고, 여성작가들의 작품을 ‘또 하나의 계절’로 구성하여, 한국근현대미술사에서 자기만의 예술세계를 이룩해 낸 작가들의 작품을 집중조명하였다고 합니다.


이건희컬렉션 한국 근현대미술 특별전 <사계>

Seasons Lee Kun-hee Collections Modern and Contemporary Korean Art

 

전시 관람 안내

2023. 6. 8 ~ 8. 20

경기도미술관 Gyeonggi Museum of Modern Art (전시실 1 ~ 4)

관람시간 : 오전 10시 ~ 오후 6시,  관람료 : 무료

관람동선을 미리 알고 가는 것도 좋아요!

 

 

화창한 주말, 토요일임에도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오히려 관람에 집중하기엔 좋았지만!  아마도 경기도미술관이 위치한 안산 화랑유원지, 외진 접근성도 한 몫하는 듯하다. 전망도 좋고, 시설도 좋은 미술관인데 전시실 전관을 사용한게 십여년만이라니 많이 아깝기도 하고, 경기도와 운영하는 주관부서의 나이브한 의식이 많이 아쉬운 부분이다.



레터링은 자연의 순환이나 계절의 순환처럼 디자인하였다고 합니다. 다른 글자는 1세대 한글폰트 디자이너 최정호 선생님이 고안하고 직지소프트에서 발전시킨 '견출명조' 체로 지금 시대 디자이너와 참여작가들과 동시대를 살았던 디자이너의 그 자체를 병치시켰다고 하네요.

새로운 계절




 

김종태, <사내아이>  1929  캔버스에 유채, 43.7x36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인트로작품 1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우수한 작가들 작품들이 많다는 것과 낮잠자는 사내아이의 꿈결속에 같이 들어가서 근대기, 지난 역사속작품들을 다시 되돌아보자, 여행해보자는 의미로 선정했다고 한다. 김종태 작가는 29세에 장티푸스로 요절을 해서 작품이 4점밖에 안 남아 있는데 그중 한 점. 유화를 독학해서 굉장히 독특한 본인만의 양식을 보여준다. 유화를 수채화처럼 시원한 몇 번만의 터치로 특징을 잡아내고, 색감도 굉장히 옅은 수채화처럼 사용했다. 색감조화, 인물 캐릭 잡아낸 실력을 보면 굉장히 천재적인 작가님이시다. 


 

김종영 kim chongyung <작품79-8> 1979, 나무, 65×34×30㎝


인트로작품 2

서예를 수행적으로 연마를 한 김종영 작가의 서양조각 작품. 서양 조각의 미학과 서예정신이 결합된 작품이라 인트로에 배치했다고 한다.

 


 

이종우 Lee Jongwoo, <모(某)부인상>  1927, 캔버스에 유채


최초의 프랑스 그림 유학생이자 파리지앵을 체험한 작가. 파리화가 '게랑미술연구소'와 러시아화가 '슈하이에프연구소'에서 3년간 고전주의기법을 익혔다. `모부인상`은 슈하이에프연구소에서 만난 러시아 친구부인을 모델로 그린 그림. 이 작품은 '인형이 있는 정물'과 함께 파리공모전 '살롱도톤느'에서 한국인 최초 입선, 탄탄한 묘사력이 돋보이는 고전풍의 사실주의 작품. 안정감 있는 자세, 치밀한 묘사력은 해부학을 바탕으로 인체 데생을 연마한 결과라고 한다.

 


 

구본웅, <여인좌상>  1940년대  목판에 유채, 23x15cm  가나문화재단소장


동양적인 요소가 더 많이 보이는 작품. 이상의 친구라서 친구 초상을 그린 걸로 잘 알려져 있지만 불교 도상도 많이 그렸다. 목판에 유채를 음각해서 쌓아올린건데 옅은 수묵처럼 올라가서 선적인 요소나 터치된 면이 굉장히 한국적이고 동양적 요소가 서양기법과 융합되어 독특한 화풍을 보인다.

 


 

백남준 Paik Nam June, <TV 부처> 1974(2002)*,  석불좌상, CRT TV모니터, 폐쇄회로 카메라, 가변크기, 백남준아트센터소장  * (2002) : <TV부처>는 1974년 처음 제작되었고, 이 백남준아트센터 소장품은 2002년 다시 제작되었다.


불상 찍는 게 모니터 화면에 실시간 라이브로 나온다. 불상에 가려져서 내 얼굴을 보려면 안나온다. ㅎㅎㅎ 나르시스트들아 사람들이 너 하나도 신경안써!  정신차려!  뭐 이런 메세지일까요? 요즘 현대인의 SNS 자기자랑 과대노출 관종 심리를 마치 꿰뚫어 본 듯한 백남준 미디어아트 작품이었다.

 


 

이인성 Lee Insung <복숭아 나무> 1935, 종이에 수채, 30.5×53.0㎝,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세기의 천재 화가로 알려진 이인성 화가. 뛰어난 묘사력으로 조선의 하늘색, 토양색 등 자연의 컬러들을 잘 표현하였다. "자라서 이인성 화가처럼 될래요~"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들을 평상시 할 정도로 이인성 작가 활동시기엔 김환기 작가보다 인기 지분이 훨씬 더 컸다고 한다. 복숭아 나무라는 작은 그림이지만 빛 표현이라든지 섬세한 묘사력, 내추럴한 색감 표현이 너무나도 한국적이고 소탈하게 소박하게 사랑스럽다.




이인성 Lee Insung <남자누드> 1930년대, 나무에 유채, 25.5×20.5㎝, 대구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이인성 Lee Insung, <여인의 초상> 1940년대 초반, 패널에 유채, 27.0×22.3㎝,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여인초상> 1940년대, 캔버스에 유채, 26.0×21.0㎝, 대구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생각하는 사람 로댕풍의 누드화에, 한복입은 여성을 백그라운드에 아련히~ 배치하고 이마를 움켜쥔채 골치아파하는 천재 작가의 또 다른 인간으로서의 라이프, 자화상 면모를 이 시대에 감상해본다.여담으로는 이인성 작가가 세 번째 부인하고 살 때, 첫 번째 부인 사이에 낳은 딸과의 불화로 인해 고뇌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거라고 추정된다고 한다.  이인성 화가의 자화상, 내면 표출일 수 있다라는 추정이 있다. 위의 두 작품은 첫 번째 부인 김옥순 여사를 굉장히 사랑했고, 그분이 굉장히 부유한 신여성이었는데 일본에서 만나 결혼을 했다가 일찍 사별하게 되었고, 그리워하면서 그린 것으로 추정된단다.  

 

이인성 Lee Insung, <주전자가 있는 정물> 1930년대, 패널에 유채, 36.5×45.0㎝,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이인성 Lee Insung, <석고상이 있는 풍경>  1934, 종이에 수채, 55.2x74.6cm, 대구미술관 이건희컬렉션


화풍이나 터치감을 보자면 인상주의 영향을 많이 받은거 같다. 서양미술, 즉 세잔 정물화, 마티스 정물화까지 후기인상주의 영향들이 군데군데 공존공생 하는 느낌이다. 노랑 평면적 배경, 백발머리 벗겨진 옥수수, 통마늘, 홍시감, 머루, 감자 등 더군다나 석고상과 같이 있는 정물화라니 ㅎㅎ 독특하고 신선한? 정물화는 사실 이 시대의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작품일 거 같다.

 

 


 

이쾌대 Lee Quede, <항구> 1960, 캔버스에 유채, 35.5×44.5㎝ 대구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이쾌대(李快大, 1913-1965)는 경상북도 칠곡태생으로 일제강점기 후반부터 해방과 전쟁으로 이어지는 1940년대 에 활동했던 화가로, 6.25전쟁기에 월북하여 잊혀졌으나 1988년 재월북예술가에 대한 해금조치로 군상I - 해방고지 1948, <군상 IV, 1948 추정 등과 같은 역사화풍의 인물화를 통해 유명세를 얻었다. 그의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 1940년대 해방이 된 새로운 나라에서 자신의 역할을 고민하는 화가의 진지한 소명 의식이 잘 드러난 역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쾌대는 1932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며 미술계에 등장하였고, 이듬해 일본의 제국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하여 수학한 후 귀국해 1941년 '신미술가협회'를 결성하여 활동했다. 해방공간에서 그가 결성한 '조선미술동맹'은 이른바 중도파 미술계의 통합단체였으며, 이쾌대가 남관, 이인성 등과 함께 운영했던 성북회화연구소1947~1950에는 권진규, 김창렬, 전뢰진, 황종례 등의 미술가들이 거쳐가는 등 비록 짧은 시기임에도 그가 한국화단에 미친 영향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이쾌대는 탄탄한 데생 실력을 바탕으로 특히 인물화에 능했으며, 역사학자이자 화가, 정치인이었던 그의 형 이여성의 영향 아래 전통적 색채와 선묘를 연구하여 화가로서 한국적 리얼리즘을 구현하고자 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항구, 1960는 그가 월북한 이후에 제작한 작품이다.

화면에는 해가 뜨고 있는 항구에 이제 막 출항한 듯한 배가 세척 그려져 있다. 앞부분의 배는 이쾌대의 작품에 흔히 나타나는 고전주의적 화풍이 엿보이지만, 배의 일부와 빛이 투영된 물결의 표현 등에서는 인상주의적 요소가 느껴진다. 1960년대 북한 미술계는 모더니즘의 방향을 두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던 시기로, 이로 인해 그의 형인 이여성이 정치적으로 숙청당한다. 이 논쟁이 시작되던 1960년이라는 제작 연도로 짐작해 볼 때, 이제 막 출함하는 배의 모습에서 긴장감과 진취적인 기상이 느껴지며, 곧 벌어질 치열한 논쟁의 시작을 암시하는 듯하다.

 




문학진 Moon Hakjin, <가을> 1966, 캔버스에 유채, 100×85㎝ 경기도미술관 소장

 

문학진 Moon Hakjin, <여류 음악가> 1969, 캔버스에 유채, 100×85㎝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1924년 대한민국 서울출생,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졸. 1953년부터 1955년까지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연이어 특선 수상, 1958년 제7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자전거에 부딪힌 운전수 1958' 문교부장관상 수상.

문학진 작가는 당시 화단에서 유행하던 자연 풍경보다는 인물과 정물 등을 주요 소재로 작업. 대상을 재해석하고 다시 구성하는 입체주의적 양식 시도하는 한편, 사실적 묘사가 강조되는 구상작품 및 기록화도 제작. 그의 작품 '여류 음악가'는 1969년에 제작되었으며, 이 작품은 의자에 앉아 첼로로 추정되는 현악기를 연주하는 음악가의 모습을 입체주의적으로 표현한 작품. 또한 경기도미술관 소장품인 '가을 1966'은 수확의 계절인 가을에 나무 등치에 앉아 쉬고 있는 인물들의 모습을 고즈넉한 풍취에 담고 있으며, 작가의 리드미컬한 운율이 느껴지는 작품.

문학진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너무나 좋아하는 나로선 이 원화보러 이건희컬렉션 간 셈이다. ㅎㅎㅎ 위의 '가을' 작품은 같은 1960년대인데도 사실적묘사이기는 하나 화면구성과 인물묘사는 서양미술 영향이 물씬 풍기는 마치 외국사람들이 한복입은 느낌같고, 마네의 풀밭위의 식사가 바로 생각나버리는 진정 한국식 가을 풍경 작품이다. 여류음악가 작품은 파격적인 부분적 마띠에르와 화면 구성은 피카소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 바로 보여버린다. 뭔가 새로운 흐름과 변화를 열심히 시도하는 열정넘치고 부지런한 천재 화가의 일상 과정에서 이런 다양하고도 실험적인 작품이 함께 공존하지 않았을까?  암튼 나의 최애작가중 한분이시다.

 


 

김흥수 Kim Heungsou, <포즈> 1970년대, 캔버스에 유채, 79.7×100㎝,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김흥수 작가 1919-2014, 함경도 함흥출생, 구상과 비구상의 이질성을 하나의 화폭에 담아 완성시킨 “하모니즘 작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구상과 비구상으로 나누어진 미술계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음과 양이 하나가 되듯 상반된 극을 접목시켰다. 동양사상의 모태가 되는 정신세계는 추상으로, 눈에 보이는 객관적인 모습은 구상으로 표현. 모자이크 기법에 착안하여 화면을 색과 면으로 분할해서 하나의 완전체가 되는 독특한 방식의 화법이 현대미술의 새로운 장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우연한 추상적 요소와 사실적 표현의 구체적 요소가 작품 속에 조화를 적당히 이룰 때 작품에 대한 설득도 되고 공감은 더욱 깊어진다. 화려하고 장식적인 레드핑크 색채와 질감으로 인해 여성누드와 서양 감각의 분위기를 기하학적인 문양과 함께 승화시키는 그림이었다.

1944 일본 도쿄미술학교 졸업, 해방 뒤 서울예술고등학교 미술과장과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강사, 1955 프랑스 파리유학. 유학 뒤 당대 서구미술의 영향을 받으며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파리 그랑드 쇼미에르 미술연구소와 미술아카데미 등에서 수학한 7년 남짓 동안 야수파, 입체파 등의 서구 근대사조와 클림트, 모딜리아니의 작품 등에 심취. 김화백은 색채의 현란한 감각과 본능적 터치를 발산하는 반추상 누드화의 세계로 진입하게 된다. 1961년 귀국 당시 그의 도발적 화풍은 평단에서 이단아로 취급받기도 했지만, 동료와 후배 작가들에게 상당한 영감과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진다.

1977년에는 추상과 구상의 조화를 타협하는 조형주의 미술 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성신여대 교수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초빙교수를 지낸 김흥수 화백은 1990년대 이후 작업에 전념했다. 2000년대 초 세 차례 수술을 견뎌내며 구순을 넘어서도 열정적으로 작업과 전시를 꾸준히 계속해왔다고 알려진다. 삶 그 자체도럼 감미로운 하모니처럼 예술로 살다가신 작가셨다.

 
 

 


 

 

이응노 Lee Ungno <군상>, 1985, 종이에 수묵, 167x68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이응노 Lee Ungno <구성>, 1976, 종이에 채색, 188.5x115.5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고암 이응노 1904 - 1989, 충남 홍성출생. 이응노 화백은 동아시아의 서화전통을 활용해 현대적 추상화를 창작한 한국현대미술사의 거장이다. 전통 사군자 작가로 미술에 입문, 1930년대 후반과 1940년대 전반에는 일본에 유학하여 새로운 산수화풍을 습득하였다. 1958년 프랑스로 유학, 동서양 예술을 넘나들며 ‘문자추상’, ‘군상’시리즈 등 독창적 화풍을 선보이며 유럽 화단의 주목을 받았고 독일, 영국, 이탈리아, 덴마크, 벨기에, 미국 등지에서 수많은 전시회를 열었다. 1964년에는 파리에 위치한 세르누시 미술관 내에 ‘파리동양미술학교’를 설립해 프랑스인들에게 서예와 동양화를 가르치며 동양문화 전파에 힘쓴 교육자이기도 했다.

이응노작가의 작품에서 인간의 형상은 항상 중심이다. 1960년대 추상화속에서 발견되는 자연 속 인간, 인간 형태를 문자처럼 변형하여 70년대의 문자추상시리즈 속에서 인간의 모습은 붓놀림과 서체와 융합되어 독특한 패턴으로 변화해 갔다.

1980년을 기점으로 1989년 작고하기까지 제작된 ‘군상’ 연작은 작가의 인생관과 예술관이 집약적으로 담겨져 있는 이응노 예술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1989년 1월 이응노 작가는 서울 호암갤러리에서 열리는 회고전을 앞두고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그의 유해는 파리의 ‘페르 라 세즈’ 시립묘지에 안장되었다. 이후 파리, 뉴욕, 서울, 도쿄, 오사카 등지의 갤러리에서 추모전이 열렸다.

이응노의 작품은 현재 뉴욕현대미술관(MOMA), 파리 퐁피두센터, 국립장식미술관 및 스위스, 덴마크, 이탈리아, 영국, 대만, 일본 등 전 세계 각국에 소장되어 있다.


 


 

고영훈 Ko Younghoon, <지성인>, 1992, 종이에 천, 아크릴릭, 119.5x172.5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고영훈 작가 1952~ 제주태생, 홍익대학교와 동대학원 서양화과 졸업. 1974년 제2회 《앙테팡당》전을 통해 극사실적 경향의 돌 작품을 소개하기 시작했고, 제6회 인토트리엔날레와 제42회 베니스비엔날레에 출품하면서 이 경향의 대표적 작가로 부상했다. 1985~1993년에 서울 두손갤러리와 파리 알랭브롱델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을 통해 작품을 소개했고, 1990년대 후반 이후부터 가나화랑의 전속이 되었다. 1987년 대한민국미술기자상을, 1991년에는 토탈미술대상을 수상했다. 바젤아트페어, 시카고아트페어 등과 크리스티, 소더비 등의 미술시장을 통해 국제적 위상을 견지하고 있다.

1980년 '스톤 북' 시리즈로 신문, 잡지, 책표면에 돌을 올려 놓음으로서 서술적구조를 취한다. 고영훈 작가는 공간과 시간에 대한 지대한 관심으로 당시 작업동기를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나는 내 앞에 놓여진 돌과 내 손가락 사이의 싸늘한 공간을 느끼며,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는 돌멩이에서 시간을 느낀다”

돌과 책 사이의 관계를 역전시키고, 혼돈시키는 방향으로 실험작품을 하였다. 허상과 실재 사이의 관계성에 대한 관심은 실물 오브제로서 책장을 캔버스에 콜라주하고, 위에 돌멩이를 일루전으로 등장시키는 기법으로 발전되었다. 정확히 말해서 대부분 돌멩이는 허상, 캔버스에 콜라주된 책장들은 실제이다. 오브제 의미와 형식은 일루전기법과 실제 사물의 관계를 역전시키거나 충돌시킴으로서 도출되는 효과에 있다. 고영훈 작가는 자신의 작업노트에서 다음과 말했다.

“양극의 대립에서 역설적으로 발생되는 긴장된 조화를 창출하고자 하는 것이다”

1989년 새깃털이 등장하면서 의미구조가 복합적 단위로 확대되었다. 책과 돌 그리고 깃털의 관계는 뒤이어 장갑, 작업복, 시계추, 타자기, 칼, 숟가락, 수통, 삽, 시계, 냄비, 깡통, 주전자 등의 오브제 이미지로 다변화되었다. 캔버스 구조도 반복과 대비 그리고 삽화, 집적, 그리고 서체를 도입해 오브제의 의미를 다양하게 변주시켰다. 오브제 하나하나가 마치 무대에 등장하는 주연, 조연배우들처럼 극적대립과 긴장을 통해 역설적이면서도 결국엔 작가가 연출, 의도한대로 조화로운 관계를 만들어 해피한 결말을 만들어준다는 재밌는 느낌이 들었다.

고영훈 작가의 미술을 서양미술사조와 연관지어 말하자면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닙니다' 라는 작품이다. '이것은 돌입니다'라는 제목의 작품과 비교되기 때문이다. 마그리트가 파이프를 극사실적으로 그리고선 파이프임을 부정했을 때, 일루전일 뿐인 그림본질을 폭로하고, 더 나아가 회화본질에 대한 역사적 편견으로부터 해방을 시도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런데 고영훈 작가의 경우엔 돌의 일루전을 시전하고는 돌임을 명명했다. 꽃의 이름을 불렀을 때 꽃은 비로소 하나의 의미가 되듯이 돌이라고 해줌으로서 비로소 작가에게 돌맹이란 존재의 의미로 다가올 수 있었다는 평가다. 결국 돌맹이의 실체는 허상이지만, 허상이미지는 명백히 실존하는 대상이된다고!. 르네 마그리트와는 다른 차원의 가치로 평가된다고 한다.

난 솔직히말하자면 하이퍼리얼리즘(극사실주의회화)은 극혐정도의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하이퍼리얼리즘의 선구자격인 고영훈 작가의 '지성인'이라는 그림을 이번에 알게되고, 작품의도가 궁금해 뒤져보고선 무조건 내 취향이 아니라고 터부할게 아니란 걸 느끼게 되었다. 정말 재밌는게 보통 머리나쁜 사람을 속된말로 돌대가리라고 하지 않나? ㅎㅎㅎ 그런 돌멩이와 문명을 상징하는 책장을 캔버스에 한장한장 꼴라주하고 대비시켜서 어떤게 진짜인지 분간이 안가는 하이퍼리얼리즘적으로 표현했다니? 가히 천재적인 발상이다. 바로 눈앞에서 봐도 돌멩이가 진짜인지, 책낱장 하나하나가 진짜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작품 액자도 어디서부터 진짜 액자인지도 헷갈리게 하는 ㅎㅎㅎ 내가 이 전시, 이 작품앞에 오브제로 일루전 되어 있는건 아닐까? 하는 재밌는 상상도 하면서 즐겁게 감상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고영훈 작가의 그림 오브제는 오브제가 아닌 동시대 시공간을 넘나드는 의미의 아이콘이 되었다. 고영훈 작가의 극사실회화는 이렇듯 자신만의 고유한 언어구조를 확립하게 되었다. 고영훈 작가의 작품세계관은 관람객의 시각적 호기심,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아낌없이 충족시켜 준다. 이러한 즐거움이 우리네 다양한 직업과 삶에 영향과 신선한 영감을 주니, 진짜와 가짜이미지는 이미 진짜돌멩이로서 그 값을 충분히 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김기창 Kim Kichang, <소와여인>, 1960년대초, 종이에 채색, 221x169.S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재)운보문화재단, 작품이미지 사용권리는 '(재)운보문화재단'이 갖고 있다.


운보 김기창 작가 1913~2001, 청각장애를 딛고 산수, 인물, 화조, 추상등 한국화의 모든 영역에서 탁월한 작품을 남긴 한국화가이다. 1913년 서울 출생. 7세에 장티푸스의 고열 후유증으로 청신경을 상실했다 한다.

바보 산수로 유명하신 김기창 화백은 천진난만한 어린아이가 그린 것처럼 해학적인 형태와 멋스런 필치로도 유명한 작가다. 일제강점기부터 현대까지 활동한 한국화가. 일제강점기에 김은호 문하에서 수학한 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연속 입상하며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힘. 1970~1980년대에는 산수화 전통 위에 현대적 감각을 더하여 ‘바보산수’와 ‘청록산수’ 연작으로 대표되는 독자적 예술세계를 완성. 한국의 전통 회화와 현대 미술을 연결하는 교두보 역할을 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50~60년대에는 추상적 화면실험도 했고, 앵포르멜, 젝슨 폴록에 영향받은 것처럼 어떤 추상적인 실험들을 하는 과도기 과정을 보여준 작품.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임에도 작가의 친일행적으로 인해 많이 아쉬운 부분이 있다. 

또하나의 계절 섹션에는 아내 박래현 작가의 작품과 살짜쿵 비교해보면서 누가 누구에게 영향을 받은걸까 유추해봤다. 아무래도 내 생각엔 박래현 작가의 작품에 더 많은 박수와 엄지척을 ㅎㅎㅎ